기억속으로

단자 그 사라진 풍속

언 직/沙竹堂 2010. 1. 13. 23:03

 

 

단자 그 사라진 풍속

 


이달 들어 날씨는 혹독하게 추운데 청첩장의 수는 자꾸 늘어나니 결혼을 음력 해를 넘기지 않으려는 심산인가 싶어진다. 아침 일과 시작 전 차한잔 나누면서 이번 주말 대여섯건의 잔칫집 부조금을 얘기하다 나이든 사람들 끼리 이 저런 얘기들 속에서 단자놀이에 입 모아져 옛이야기를 들추어낸다. 기억도 아물거릴 단자 그 추억을.......


되살려 보면

다 같이 어렵게 살던 6,70년대 마을에 잔칫집이 생겨나면 청년들은 끼리끼리 무리지어 단자가기로 작정하고 궁리를 한다. 잔칫집의 살림살이가 어떠한지, 혼주의 성품이거나 고방 지기는 누군지 또 다른 단자꾼들은 얼마나 될지 방문 시간은 언제가 좋을지 앞잡이는 누구를 내세울지 등등을..............


정해지면 

나선다. 잔칫집 음식 담을 소쿠리나 함재기 같은 그릇과 술 담을 커다란 주전자를 들고 갔다.

 

가면 

단자라고 외치고선 고방지기를 불러내어 단자 꾼이 몇 명이며 얼마쯤의 떡과 고기와 술의 양을 청하고


청하면

고방지기께서 적당하다 싶으면 말없이 내어주고 많다고 느끼면 적당하게 조정하여 단자 꾼에게 양해를 구한다. 손님이 많다느니 또 다른 단자 꾼들이 몇이나 다녀갔다니 잔칫날이 아직 남았다느니 이런저런 핑계 대면서.............


핑계 대면

단자 꾼은 아양을 떨거나 협박(?)하거나 딴지 걸 수밖에. 잔칫집이 우리 마을일 경우엔 고방지기가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씨족끼리만 사는 동네기에

이웃 마을이면 단자 그 형태가 조금은 다르게 전개된다. 아는 친구를 동행케 하거나 그 누구의 이름을 팔아서라도 소쿠리를 채우고 채움이 적다 싶으면 굴뚝에 호미를 넣겠다. 또 뭘 어쩌겠다는 둥 점잖은 협박을............

 

그러면 

단자 소쿠리를 좀 더 채워주거나 협상(?)이 길어지면 혼주께서 나오셔서 단자 꾼들과 고방지기에게 한마디 하시면서 거중을 조정한다.


채워지면

어느 사랑방에 눌러 죽치고 앉아 푸짐한 세상 된다. 별미가 그리 흔치 않던 시절 그 맛은 일품, 이야기는 끝도 없이 길어지고 막걸리에 물을 많이 탓다거나 혼주나 고방지기가 쪼잔 하다거나 인심 좋다든가 사돈간의 기울기 정도나 신랑 신부 자랑이거나 작은 흠들을 들추어 모자라는 안주삼아 날밤을 새웠다......... 


때론 단자꾼들끼리 만나면 기선 잡으려고 먼저 왔느니 연고가 더 많다느니 하면서 적잖은 기 싸움도 했었고. 어쩌다 단자 소쿠리가 넘쳐날 때도 있었다. 같은 날 잔칫집이 둘도 있었기에............


사라진 옛 잔칫날 풍속이 어디 단자뿐 이였던가?

이웃을 위해 어떤 집에선 막걸리 거르고 어떤 이웃은 떡 만들고 또 어떤 댁은 땔감보태고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음식 장만에 일손이라도 보태고 그릇도 나누어 쓰던 그 정다움도

잔칫집에 떼 지어 몰려 다녔던 거지패거리의 각설이 타령도

신부 신랑 집 오가며 치른 사흘간의 잔치도

신부 집에서 신랑이 당한 그 고난도의 시련도(?)

신랑 신부 뒤 따랐던 상각(상객)행렬도.............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에도 잔치를 사흘간이나 했으니 지금으로선 참 이해할 수 없는 풍속이지만 막걸리에 김치 장구장단만으로도 신명이 났고 중신애비 말 보탬에 놀아나도 오금 걸지 않았고 작은 흉 있어도 숨겨 주었고 좁은 방에 줄줄이라도 금슬 좋아 아들 딸 낳았고 끼니가 걱정되어도 누굴 탓하지 않았고 친정 길 처가길이 뜸해도 앙탈 없이 잘들 살았는데............


견주면 

애는 적게 낳고 살림은 불고 뽄때는 더 나고 시댁 길은 멀어도 처가 길은 닳고 닳았는데도 왜 덜 신명나는 건지.

나만 그런가?

자네는 어떤가?

영측 없이 옛 생각 떠오르니 아마 추위 때문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