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어머님
자전거 과 어머님
칠순을 훌쩍 넘기신 어머님께선 아직도 자전거를 즐겨 타신다.
아이들이 타는 작은 자전거, 뒷바퀴 옆으론 보조바퀴가 달린 그런 자전거
노인당 과 텃밭 가실 때 이용하는 애마(?)이다
어머님의 텃밭은 40여년에 이른다.
예전엔 집 뒤 산턱에 자리 잡아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이젠 3Km에 이른다. 노인당은 버스 두정거장 쯤.
밭으로 가는 길
산 아래로 길이 처음 생겼을 적에 교통량이 많지 않아 한적하였으나
아파트와 공장들이 들어서니 자연 차들도 늘어나고
그런 길 따라 자전거 타시는 어머님은 늘 상 위험에 처해있다.
용케도 여태 아무 탈 없었지만 늘 불안의 연속이라
어머님께 강권한다.
힘드시더라도 차도가 아님 보도를 이용하시라고
어머님께서도 그러마라고 말씀하시곤 행동은 그렇지 못하신다.
밭으로 행차하실 땐
자전거 꽁지엔 바퀴달린 시장바구니를 메 달고 다니시니
보도는 엄청 불편하단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으로...
집으로 올 땐 수확한 채소 등을 실었으니 오죽 하겠는가
그러니 아스팔트 차도를 이용할 수밖에
편안하고 편리한 것을 추구하는 게 사람들의 속성인지라
위험은 당장의 안중에도 없으시다.
딱한 나머지
다혈질 작은 아들이 나서 행패(?)를 부린다.
어머님 자전거 못 타시도록 쇠줄로 묶어버렸다.
어머님께선 요즘 들어 허리가 좋잖아 노인당까지도 걷기가 힘들다면서
자전거 못 타게 하려면 노인당 과 텃밭 오갈 적에 택시 타게
택시비 내놓으라신다. 하루 4천원을
작은아들이 무서운지 두려운지 아들에겐 말 못하시고
작은 며느리에게 화풀이하듯 말하고선
자동차운전면허를 따 자동차로 다닐 거라며 운전면허 시험 문제지를
어디서 구했는지 뒤적이신다.
글씨가 작아 보이지 않으신다며 돋보기안경 2개나 겹쳐 보신다.
그래도 읽기에 불편함은 매일반
그나마 듣도 보도 못한 말들이 나오니 난감하기도하시고
작은 아들이 성질 돋군다. 끝말을 올리면서
『오매는 읽어도 무슨 말인지도 모르요』
난 어머님을 부추긴다.
큰 며느리는 운전면허 꿈도 못 꾸는데 운전면허를 생각해 내셨다고
운전면허에 도전해 보시라고
이쯤해서 큰 아들이 그냥 지켜만 볼 수 없기에 중재하기에 이른다.
자전거는 이제 너무 위험하고 택시비 운운은 맞지 않고
하여 어머님께선 텃밭에 일주일 두 번만 다니시라고
주중에는 작은 아들이 텃밭 오갈 적에 모셔드리고
주말에는 큰아들과 함께 텃밭에 가자라고
어머님께서 이른다.
사흘거리로 텃밭가면 텃밭이 아니라 풀밭이라 안 된다며 버티시다.
앞으론 매일 가지 않아도 되는 작물을 가꾸기로 하고
마지못해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며 우리들에게 져 주신다.
웬 총
약속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밭엔 매일 가야 제대로 농사를 짓는 것이라
예전처럼 새벽에 살짝 집을 나서신다. 물론 자전거 없이 걸어서
요즘 같은 더운 날엔 새벽이 일하기 좋음은 예전 농사일 거들었던
큰 아들은 능이 암이다.
어머님은 평소에도 걸음이 빨라 밭까진 족히 반시간이면 도달하신다.
며칠간을 걸어서 밭을 다니시다보니
허리도 아프실 테고 시간도 더 걸리고 날은 더 덥고 하니
자전거 매단 것에 슬슬 부아가 나셨는지
이젠 큰 며느리에 역정이시다.
집에 있는 또 다른 자전거를 수리하여 타거나 자전거를 새로 사겠다는 둥
네발 오토바이를 사려고 알아봤더니 생각보다 너무 비싸더라는 둥
며칠 못간 사이 고추가 녹아내렸다는 둥
큰며느리는
어머님을 달래 듯 설득 하듯 하였으나
역정이 그치지 않으시자
큰아들에게 하소연하듯 한다. 어머님께 어찌 해보라면서
작은 아들에게 자전거 내 놓으라고 호통을 치거나
달래거나 해서 자전거를 되돌려 받도록 하지도 못하시면서
왜 제게 화를 내시는 거냐고
큰 아들은 허허거리며 말한다.
『그야 큰 며느리가 만만하니까 그렇지』
만만하다는 것은 좋다는 의미도 내포 내어 있음을 우회하여 말한다.
사전에야 그 뜻을 어찌 설명하던 상관없이......
큰 아들은 어머님 편이다.
어머님께서 밭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그 누구도 방해해선 안 된다.
아들과 며느리는 어머님을 도와야한다라고.
그게 어머님의 삶이며 믿음이니까
텃밭이래야 고작 100평 정도일지나 그곳은 어머님만의 공간이다.
푸성귀나 과일을 가꾸어서 먹거리로 장만하는 일만이 아니다..
여태 살아오시면서
고부간의 갈등으로 우시고 싶었을 때
살림살이에 고단하여 힘드셨을 때
노인당에 노인끼리 티격태격한 날도
때로는 마음편이 쉬시고 싶을 때도
그 밭에 계셨다.
열두 식구가 부대끼며 살았던 옛적
어머님께서 편하게 보낼 곳이 어디 있었던가? 정지간이 아니면
아침 일찍부터 이슥 도록 손은 젖어계셨는데
아흔아홉 시조모까지 층층시하로 사셨는데
몹쓸 병으로 왼 가슴을 도려내고 사셨는데
지아비는 지천명에도 이르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렸는데
당신 닮은 큰 딸도 왼 가슴 도려냈는데
출가한 딸들이 그리 편치도 않는데
작은 아들은 간이식으로 간신히 목숨 부지했는데
언제 한시라도 마음 편할 날 있었던가?
하여 어머님께선 그 밭에서 마음을 다스렸을 것이다.
어찌 그 모든 것을 아들 며느리가 알겠는가?
하고픈 것을 하지 못한다면 어찌 그게 삶이라 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권리는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데
누구에게도 해되지 않는데
밭에서 거둔 것 우리들입에 들어가는데
아들 며느리 눈치 땜에 그만 둘까?
어림없음이다.
어머님은 한 고집하시는 강씨이시며
예전부터 농사일엔 일가견을 가지신 유명한 내곡댁 이시기에
큰아들은 다시 나서 거중을 조정한다.
자전거를 되돌려 드리도록
작은 아들에게 명하고
어머님에겐
보도위로만 타신다는 조건을 내건다.